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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정보

n번방 이용 남성 신상 폭로하는 비밀방 '주홍글씨' 등장

미성년자 등 여성의 성(性)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영상을 구매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주홍글씨’ 비밀방이 등장했다.

27일 IT업계에 따르면 일명 '텔레그램 자경단'은 주홍글씨라는 텔레그램 비밀방을 만들어 n번방에 입장하거나 성착취물을 구매하려 했던 인물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20여명이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진 이 단체는 "텔레그램 강력범죄에 대한 신상공개 및 범죄자의 경찰 검거를 돕기 위해 범죄자들을 감시한다"며 자신들의 활동을 소개했다. 현재 이 대화방에는 총 3000여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텔레그램 '주홍글씨'방에 올라온 주홍글씨 자경단을 소개하는 글(왼쪽). 그들이 박사방 자료소지자를 ‘박제’한 모습(오른쪽)이 논란이 되고 있다. /텔레그램 캡쳐

◇얼굴, 휴대폰번호, 주민등록번호까지...텔레그램에 '박제'된 성범죄 의심자들
주홍글씨 대화방에는 현재까지 약 200여명의 성범죄 의심자의 이름, 얼굴, 나이, 직업, 주민등록번호, 휴대폰 번호 및 지인의 사진 등이 공개됐다. 신상정보가 공개된 사람은 중학생부터 의사, 공기업 직원, 군인까지 다양하다. 이 곳에서는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박제’라고 부른다.

박제된 인물들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착취물 구매자 △'영상 기반 성적 학대 (리벤지 포르노)' 유포자 △'지인능욕(지인의 얼굴을 나체 사진 등과 합성하는 디지털 범죄)' 사진 유포자와 구매자 등 다수의 성범죄 의심자들이 포함됐다.

이곳에서 얼굴이 공개된 한 중학교 남학생은 같은 학교 여학생의 신체사진을 도촬한 후 텔레그램 방에 공유하며, 성적인 사진 합성을 요구했다. 이 학생은 지난해 전교 부회장으로도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학생이 '지인능욕' 사실을 인정하며 사과하는 영상이 텔레그램 방에 올라오기도 했다.

한 소아과 전공의는 자신의 어린 조카 사진을 텔레그램 방에 공유하며 아동 성착취물을 요구하기도 했다. 자경단 측은 이 의사가 아동을 진찰하며 추행하는 것이 취미라고 밝혔으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14세 미만 청소년에게 성착취물을 촬영하게 한 후 이를 공유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홍글씨 방에 신상이 박제된 남성들은 대부분 "자신은 해킹당한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일부는 자경단측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해다.

그러나 일부는 범죄 사실을 인정하며 반성문과 사과 영상을 올리고, 박제된 글을 삭제해달라고 요구했다. 한 남성은 "제가 앞으로 살 날이 많이 남았습니다"며 "한번만 봐주세요"라는 글을 써 올렸다.

◇돈 줘도 삭제 안 돼...전문가는 "경찰 수사로도 충분, 2차 가해 우려도"

글을 삭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일각에선 박제된 글을 삭제하기 위해서는 700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제공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자경단 측은 "한번 박제된 인원은 텔레그램이 망할때까지 박제한다. 범죄자들에게 인권은 없으며 후회하기 전에 잘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텔레그램 자경단 주홍글씨는 “‘만 18세 미만 아동이 출연하는 음란물을 제작, 판매, 공유, 소지하는 자’ ‘지인의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해 불특정 다수와 공유하는 자’ 등에 대해 사이트에 신상 정보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주홍글씨 홈페이지 캡처

다만 범죄 사실이 없는 경우 "신분증, 여권 등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제시하고 주홍글씨 관리진이 납득할 만한 근거가 있다면 즉시 사이트에서 신상 정보를 삭제해 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주홍글씨 방에 올라오는 신상 정보 중 성범죄 의심자 뿐만 아니라, 가족과 여자친구, 피해자 등의 정보도 올라오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실제 주홍글씨 방에서는 3세 이하의 아동 성착취물을 소지한 것으로 의심되는 한 남성의 여자친구의 신상과 얼굴, 소셜미디어 계정 등이 올라오기도 했다. 또 한 고등학생이 지인능욕을 요구하며 올렸던 피해자의 전신 및 얼굴 사진이 노출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성범죄를 통한 국민들의 분노 표출이라는 점에서는 공감하지만, 정부기관이 아닌 무분별한 신상정보 공개는 또다른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25일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탄 차량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검찰 유치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진희 변호사는 "피해자를 돕고자 하는 시민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경찰이 이미 수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증거를 수집하더라도 불법으로 취득했다면 증거로 활용될 수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수사당국을 믿고 수사결과를 기다려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죄 의심자들의 가족과 여자친구 등 지인의 얼굴을 동의 없이 올리는 것은 그들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며 "개인 신상정보 공개 등 불법의 소지가 충분한 만큼, 텔레그램을 통한 신상공개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